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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릉 답사기

    한글날인 어제 세종대왕의 둘째아들이자 조선의 7대왕 세조(世祖 1417~1468, 재위 1455∼1468)의 무덤인 광릉(光陵)에 다녀왔다. 의정부에서 가깝고 인근에 있는 광릉수목원, 봉선사가 있어 가끔 드라이브를 가는곳이지만 광릉은 두번째 방문이다. 어린 조카인 단종으로 부터 왕위를 빼앗아 집권을 했지만, 경국대전, 동국통감등을 편찬하고 화폐를 주조하여 농상을 장려하는 등 세종에 버금가는 많은 지적을 남겼다고 한다.





    주차비는 입구에서 2,000원이며, 관람요금은 성인 1,000원이고 24세이하는 무료로 관람 할 수 있다.


     










    매표소 앞에 '광릉 역사문화관'이 있는데 이곳에는 조선왕릉 과 세조에대한 정보를 볼 수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둘러 볼만한 곳이다.









      표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면 전통가옥이 하나 있는데  안내판에는 '재실'로  되어있다. 문을 모두 개방해 놓아 내부를 볼 수 있게 해놓았다.






    조선왕릉 세계유산

    조선왕릉(광릉)은

    '세계 문화 및 자연 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세계유산 조선 왕릉은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능(40기)으로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신성한 공간이며

    지금까지도 이 곳에서 제례가 이어져 오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광릉(光陵)

    광릉은 조선 제7대 세조(世祖)와 왕비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 1418-1483)의 능이다. 세조는 태종(太宗) 17년(1417) 제4대 세종대왕(世宗大王)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세종 27년(1445)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책봉되었다. 1452년 단종(端宗)이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1453년 황보인(皇甫仁), 김종서(金宗瑞)등을 살해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아우 안평대군(安平大君)을 제거하였으며, 1455년 단종으로 하여금 왕위를 넘겨주겠다는 교서를 내리게 하여 왕위에 올랐으며, 성삼문(成三問)등의 집현전(集賢殿)학자들이 단종을 복위시키려다 발각되자 모두 사형에 처하고 집현전을 폐지하였다.

    세조는 정관정요주해, 본국지도등을 편찬하게 하고 변방의 경비를 굳건히 하며 구세의 조사에 힘을 기울였다. 국조보감의찬술·군제개혁·찰방신설·각 도에 거진 설치·호패법의 재실시·상평창 제도시행·잠업장려·둔전제실시·경국대전의간행·간경도감신설·팔방통화주도 등 문무 제도를 정비하였다. 그리고 동국통감·역학계몽요해·잠서·선종영가집·금강경언해·원각경·오륜록등을 간행하게 아였다. 규형·인지의를 제작하여 토지 측량을 쉽게 하였다. 또한 북쪽 변방을 침범하는 만주족을 정벌하였다. 세조는 재위 14년  동안 많은 업적을 쌓아 중앙집권적 왕권강화에 크게 공헌하였으나, 말년에는 단종에게서 왕위를 빼앗은 것에 대한 인간적 고뇌에 싸여 번민하다가 불교에 가르침에 의지하였다.

    정희왕후 윤씨는 파평부원군 윤번의 딸로 태어나, 세종 10년(1428) 혼인하였고 1455년 왕비가 되었다. 덕종·예종·의숙공주를 낳았다. 성종이 왕위에 오른 후 7년 동안 나이 어린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린 조선시대 최최의 수렴청정을 한 왕후로 유명하다. 






     안내판을 지나면 울창한 숲길을 따라 산책하듯 올라 갈수 있는데, 세조는 생전에 이곳의 숲과 산림에 반해 자신의 능으로 정했다고 한다.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홍살문과 안쪽으로  정자각이 보인다.






    [세조능]



    [정희왕후능]


    정자각을 앞쪽 가운데에 두고 왼쪽에 세조, 오른쪽에 정희왕후 능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 왕릉 최초로 왕과 왕비의 능을 서로 다른 언덕 위에 따로 만든 동원이강릉(洞原異岡陵) 형식을 취하였다. 광릉은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 197호로 지정되었다. 















    세조는 자신의 능에 석실과 병풍석을 쓰지 말라는 유훈을 남겨, 석실은 회격으로 소박하게 꾸몄으며 병풍석이 없다. 그때까지 병풍석에 새겼던 12지신상도 연꽃봉오리가 봉긋한 난간동자석주에 옮겨 새겼다.






    양쪽에 울창한 숲사이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름답다.






    정희왕후능에도 올라가 보고 싶었지만 혼자몸이 아니라 포기한다. 다음에 올땐 꼭 올라가 보리라. 정자각에 올라 안쪽을 보니 저 네모안의 모습이 다른 세상처럼 느껴진다.






    집에 돌아 오려다 작은 터를 발견했는데 이곳에 수라간이 있었다고 한다. 1930년에 찍은 사진에 수라간의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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